인도네시아 바탐섬에서 있었던 2022 TWR ASIA PC< 참가 후기를 나눕니다.
만날 수 없어도
전할 수 있어요
TWR Korea 북방선교방송
TWR 간사들이 11월 1일부터 4일까지 인도네시아 바탐섬에서 열린 2022 PC< 에 다녀왔습니다. PC< 는 TWR 아시아의 모든 동역 기관이 함께 모여 사역을 보고하며 교제를 나누고, 필요한 훈련을 하는 연례 모임입니다. 캄보디아, 파키스탄, 네팔, 인도, 중국, 스리랑카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는 TWR의 다양한 사역을 접하고 사역자 및 후원단체들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정인자: 3년 만에 콘퍼런스가 대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며 손을 마주 잡으니 반가움이 배가 되었습니다. 각 나라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TWR을 통해 여전히 많은 일들을 이루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소 딱딱할 수 있었던 회의에서 한국팀의 유머감각 때문에 모두 웃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역자들이 K팝, K드라마를 즐긴다며 한마디씩 한국어 실력을 뽐내는 걸 보며 은근 기분도 좋았습니다.
유다은: 세 살짜리 아들을 아빠와 남겨두고 떠나는 발걸음이 쉽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셔서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리더십 트레이닝을 통해서는 간사님들을 더욱 이해하고 신뢰하게 되었고, 아시아 각국과 미국 본부에서 이루어지는 TWR 사역보고를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점점 변해가는 미디어 환경에서도 여전히 라디오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매일 프로그램을 번역하고 제작하는 일에 더 큰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청취자 간증을 나눌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하나님께서는 북한에서 단 한명이라도 저희 프로그램을 듣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각국의 사역자들과 직접 만나 교제할 수 있었던 정말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기회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동엽: PCLT를 가기 전, 이번 기회를 통하여 twr 문화에 대해서 잘 배우고, 또한 싱가포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지 단순히 궁금한 마음으로 PCLT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 가벼운 마음으로 싱가포르로 떠났습니다. 1주일간의 PCLT를 마치고 들었던 가장 큰 생각은 하나님께서 세계 곳곳에서 직접 손을 내미시고 놀라운 방법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PCLT가 단순히 친교 모임이나 회의를 넘어서 서로의 사역을 공유하고 개발을 도울수 있는 여러 툴들을 제공하는 아주 체계적이고 도움이 되는 교육임에 감동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사역을 하는 사역자들을 보면서 힘을 얻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사역의 방향을 잡을 수 있겠구나 하는 큰 그림을 그릴 수 도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각 나라의 방언과 언어를 통하여 함께 한분 하나님을 찬양하며 천국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현숙: 2010년 PCLT에 다녀온 후 다시 갈수 있는 기회가 되어 함께 다녀왔습니다. 영어 울렁증이 심해서걱정이 많았지만 가족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간사님들과 출발…… 오로지 한국어로 얘기를 하며, 알겠지 하면서 즐거운 만남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예레미야 31장3절).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지만 각자의 나라에서 주님의 사랑을 나누고 전하는 사역자들을 만나는 것이 귀하고 감사했습니다. 영어를 못해서 좀더 깊은 교제를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모든 일정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이끄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박찬아: 라디오가 복음을 전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매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아직도 기독교를 박해하는 장소에서는요.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께 충성된 사역자들이 이렇게 많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생명, 한 생명을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 우리가 세계 곳곳에서 한마음으로 합력하게 하시고, 우리가 그 열매를 확인할 수 있게 하셔서 참 좋았습니다.
주상훈: 한국은 추위로 얼어가고 있었지만 싱가포르로 향하는 나의 짐은 한결 가벼운 반팔들로 준비되었다. 가벼운 짐만큼이나 나의 마음도 가볍게 준비되어 있었고, 앞으로 무슨 일이 나에게 다가올지 알 수도, 알고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나에겐 PCLT라는 거창한 말보다 싱가포르-인니 여행이라는 표현이 더 맞았던것 같다. 어쨌든 도착한 싱가포르의 날씨 앞에 짜증이 조금난건 확실했으나 이내 이국적인 풍경과 건물마다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바람이 다시금 여행이란 가벼운 단어로 내 생각을 상기시켜주었다. 3일간의 행복했던 싱가포르의 여행 끝에 결국 피하지 못하고 나에게 찾아온 PCLT는 여름방학 숙제를 내팽겨치다 다음날 개학을 맞이한 것과 같았다.
월요일, 페리를 타기 위해 모였다. 그때부터 내 문화는 더 이상 한국이 아닌, 아시아 그 자체였다. 비록 영어를 쓰곤 있지만 결국 그 안엔 아시아권이 가득했다. 그 속에서 난 길을 잃었다. 무리들의 떠드는 소리에 내 영혼은 내 의지 따윈 필요없는 듯 이리로 흐르고 저기로 흘렀다. 내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지만 그 미소는 내 영혼의 부재로 인한 넋 나감이었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나는 그들과 섞이지 못했다. 한바탕 내 안의 소란이 지나간 뒤 인니에 도착했음을 느꼈다. 저녁이라도 편안하게 먹고자 했던 내 의지는 다시 한번 무너졌다. 내 저녁식사 테이블은 이동엽간사님과 둘만 앉아 있기엔 너무나 컸고, 결국 비어있는 자리엔 브루스와 그의 아내가 앉았다. 알 수 없는 대화가 오갔고, 눈치로 대화의 흐름을 파악하던 내게 저녁음식은 더 이상 음식이 아닌 피난처였다. 대화의 흐름이 내 차례로 올때 쯤엔 난 내 접시에 있는 치킨을 베어물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리액션과 함께 혼란스러운 첫째날이 끝났다.
날이 밝고 본격적으로 PCLT가 시작되었다. 내 기억속엔 난 단한번도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들어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젠 피할 수 없었다. 도망가기 위해선 차를 얻어타고 배를 탄다음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을 의지했다. 그러나 이 결심은 스위스-독일권 사람 필립의 강의로 무너져버렸다. 정말 유익했으나 정말 재미없었다. 당연히 Conference니까 재미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드문드문 들리는 영어와 자장가 같은 필립의 목소리, 거기에 사실 한국에서 이미 한번 들었던 강의라는 삼위일체(를 써야하는게 맞나?)는 나의 흥미를 부셔뜨렸고 아무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게 만들었다. 그렇게 첫날은 종료되었고,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남아버린 체력은 호텔 근처 쇼핑몰에서 소모했다. 어쨌든 그때의 난 아직도 여행자였던것 같다.
두번째날, 이번엔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정말 이 시간은 유용했지만서도 끔찍했던 하루였다. 좋으신 하나님을 서로의 언어로 부르는 경험을 시작으로 우리의 문화는 융합되었고, 조금은 나도 그들과 섞이는 것 같았다. 컨퍼런스의 중간 티타임마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조금은 친해졌고, 내 귀도 조금은 영어를 받아드려주었다. 사실 살고싶으면 어떻게든 귀를 열어야했으니까. 그 다음 시간. 브루스는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은 나라별로 앉아있는 테이블을 섞어 발표하게끔 우릴 유도했다. 마치 폭탄이 책상에 떨어진 것 처럼 우린 한명도 어김없이 흩어졌다. 나는 영어를 잘해 나의 안식처이자 피난처였던 이간사님의 품을 떠나 홀로 인도와 스리랑카, 그리고 싱가포르의 사람들 사이에 섞이게 되었다. 정말… 끔찍했다. 질문도 어려웠는데 그 답을 영어로 하기엔 내 영어 스킬은 완전 bad였다. 문화로 인한 어려움과 힘들었던 점에 대해 사람들은 토론했고, 나는 지켜봤다. 아니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소리에 파묻혀 나는 소멸했다. 그때 and korea? 라는 질문과 함께 모든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었고, 이미 소멸되었던 난 끝내 질문의 답을 할 수 없었다. 소 디피컬트 퀘스쳔 이란 세 단어만 내뿜은채 난 장렬히, 아니 초라하게 퇴장했다. 다시 그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토론을 했고, 나의 영혼은 지구 한바퀴를 돌아 아마 반대편 저 아르헨티나 쪽에 있었던 것 같다. 끔찍한 30분이 시간이 지나 난 터벅터벅 우리 테이블에 먼저 도착해 멀리 도망가버린 내 영혼을 향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득차 집에 얼른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다신 이 컨퍼런스에 다신 참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날, 이미 모든 체력을 소모한 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영어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주인을 떠나 보낸 강아지처럼 풀이 죽은 채 오전 시간을 보냈다. 여하튼 한국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나에게 시작된 각 나라의 사역 소개는 도망가있던 내 영혼이 돌아오게 만들만큼 놀라웠다. 화려한 피피티안에 숨겨있는 각 나라의 사역은 흥미로웠다. 들리지 않던 영어가 한국어만큼(은 약간 추억보정인것 같지만) 들리기 시작했다. 서로의 문화는 달랐지만 하나님은 한분임을 느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전도여행을 떠나던 바울, 그리고 더 많은 성도들처럼 우리 또한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만의 전도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몸으론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전파는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21세기의 전도여행은 한계가 없음을 느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내가 북한을, 한민족을 사랑하듯 그들은 그들의 민족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난 내가 품고 있는 내 민족을 향한 사랑을 그들의 민족에게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내 민족이었던 것 처럼 인도를, 스리랑카를, 파키스탄을, 미얀마, 필리핀, 인니, 중국, 일본 등 모든 아시아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때 비로소 내 영혼이 더 이상 기름으로 그들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아닌 그들과 같은 물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되어 섞이게 되었음을 경험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눠준 성찬식의 포도주는 내 느낌이 현실임을 깨닫게 해주는 하나의 장치였다. 마지막에 와서야 모든 이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한 여행이 그저 하나의 여행으로 끝나는게 아닌 전도여행으로, 비록 모든 나라의 땅을 밟진 못했지만 내가 북한에 보내는 라디오 전파처럼 피피티 파일로 인해 그 나라들을 사랑하게 되었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홀로 받으시길.
한국에 도착한 날의 주일설교는 성도의 안부를 묻는 일에 대한 것이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안부는 단순한 인사가 아닌, 정말로 그들을 향한 사랑과 권면, 그리고 그리움이 가득한 것이었다. 다신 볼 수 없을지 모르는 그들을 위한 바울의 사랑 가득한 안부는 세상속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응원과 중보 그 자체였다. 나 또한 솔직히 그날 보고 인사한 TWR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그들과 그들이 품은 그들이 민족들을 위해 안부를 전할 수 있도록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겠다.
(요약 : 복음을 전하러 전도여행을 떠난 바울과 성도들처럼 우리 또한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만의 전도여행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몸은 갈 수 없지만 전파는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21세기의 전도여행은 한계가 없음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들 마음 속에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자 저는 인도를, 스리랑카를, 파키스탄을,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 등 모든 아시아를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