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가르쳐준 단언의 위험

12월 첫 주, 싱가포르에서 손님이 한국을 방문했다. 일 년 내내 여름인 싱가포르에서 온 그는 “눈을 한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오늘처럼 영상 10도 되는 날씨에는 절대로 눈이 오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내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틀 뒤에 폭설이 내렸다. 올해 첫눈이었다. 눈이 쏟아지는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는 것은 태어나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시베리아 설원에서도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눈은 순식간에 쌓였고, 그 쌓여가는 모습은 마치 슬로우모션으로 재생되는 장면처럼 또렷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날씨를 주장할 수 있겠는가. 하루 앞도 알지 못하는 내가 또 교만했구나. 아는 척했구나.

절대로. 분명히. 틀림없이.
우리는 참 쉽게 단언한다. 

마치 사람이 세상을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왜 이렇게 단언할까. 생각해보니 이유가 여러 가지 있다. 설명하는 것이 번거로워서,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확신을 주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해서.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한다면, 내 경험을 너무 믿기 때문이다. 물론 확신하는 말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조직을 이끌 때는 분명한 지시가 필요하고, 리더의 명확한 방향 제시는 팀을 안정시키는 힘이 된다. 문제는 확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확신이 교만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책임과 겸손에서 나오는가이다.

때로 경험으로 체득한 신념은 강력한 지름길이 되지만, 그 지름길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경험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순간 마음은 굳어지고 배움은 멈춘다. 성경은 이런 태도를 지혜라 하지 않는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약 1:19). 세상을 판단하는 눈보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더 귀하게 여기신다. 그래야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광대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늘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다. 있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고, 내가 그리지 않은 그림도 마음을 열고 감상할 줄 아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고, 우리의 경험을 뛰어넘어 낯설고, 우리의 예측보다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너는 알지 못했지만, 나는 오고 있었다.’
첫눈을 보며 나는 깨닫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동안에도 이미 길을 열고 계셨다는 것을.

2025년 12월 11일
이김 대표(TWR Korea 북방선교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