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영혼을 위하여⋯”

종교개혁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핵심은 단 하나,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본질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교의 본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종종 본질을 잊습니다. 매일 마시는 물이 귀한 줄 잊듯, 말씀마저 익숙함 속에 그 감격이 옅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전략과 신선한 방법에 설레곤 합니다.

전략이 아무리 세련되고 정교해도, 본질에서 멀어지면 힘을 잃습니다. 선교도 그렇습니다. 굵직한 선교대회나 포럼이 열릴 때마다 탁월한 기획과 메시지가 쏟아지지만, 화려한 전략과 주제에 가려져 정작 반드시 다뤄져야 할 주제가 뒷전으로 밀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가장 중요한 내용이 사라진 채 회의와 모임이 끝나버리기도 합니다.

북한선교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북한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감당할 수 있는 안전한 범위 안으로 사역이 제한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명분 아래, 많은 북한선교가 ‘통일선교’라는 이름으로 재편되었습니다. 북한선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통일선교는 연합운동 속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북한을 돕는 일로 포장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통일을 준비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정작 한 영혼에 대한 관심이 약해진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선교는 결코 거대한 주제나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품는 데서 시작됩니다.

얼마 전 러시아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는 북한 남성들이 러시아 여성과 잠시 가정을 이루다 낳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에겐 러시아 국적이 있지만, 아버지가 한국으로 도피하거나 북송, 실종되면서 아비 없는 아이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제가 10년 넘게  북한 사역을 해오는 동안, 이들의 존재와 삶에 대해 거의 들은 적이 없습니다. 눈앞에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더 멀고 어려운 곳까지 다가갈 힘이 없었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으니 그 현실을 전해주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매일 참석하는 포럼과 선교대회에서는 구체적으로 이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여러 전문 분야와 생활 영역에서 이뤄지는 선교도 귀한 사역이지만, 그 영역만으로는 닿기 어려운 깊은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러시아에서 만난 이 아이들은 저에게 다시 한 번, 선교의 본질이 결국 ‘한 사람’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에서 버려진 자녀들에게도 그들을 떠난 이들을 대신해 우리가 먼저 사랑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탈북민 구출 사역에 헌신해 온 것은 귀한 일이지만, 의도치 않게 그 과정에서 가정이 해체되고, 그 틈에 버려진 고아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상처와 외로움까지 품어 안는 것이야말로 통일의 시작이며, 북한선교의 실제 모습이 돼야 할 것입니다.

북방선교방송의 사역 도구는 미디어입니다. 특히 북한에 한해서는 라디오가 가장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그러나 라디오도, 방송도, 미디어도 모두 도구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통해 만나는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단 한 사람일 뿐일지라도 그 복음을 듣는 그를 위해 기꺼이 삶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언제나 한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만날 수 없어도 전할 수 있어요”

2025년 8월 14일
이김 대표(TWR Korea 북방선교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