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주년은 특별합니다. 10주년, 20주년, 30주년 같은 숫자는 의미를 담아 기념할만 합니다. 그런데 31주년은 조금 애매합니다. 30주년처럼 특별한 의미도 없고, 새로운 10년의 이정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30 다음에 오는 숫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31을 마음에 새깁니다. 31은 30년을 지나 다시 시작하는 첫 번째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TWR Korea 북방선교방송은 지난해 창립 30주년을 맞았습니다. 1995년 시작된 방송이 30년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크게 감사한 일입니다. 그 시간 동안 수많은 동역자들이 기도와 후원으로 함께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방송을 만들고 전하며 북녘을 향한 복음의 길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31년째가 되었습니다. 30주년에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면, 이제는 다시 앞을 바라볼 때입니다.
지난 30년의 역사가 앞으로의 30년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해왔다는 사실이 우리를 익숙하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매일 방송을 제작하고 송출하고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면 처음 이 일을 시작했던 이유보다 어느새 ‘해야 하는 일’이 먼저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31이라는 숫자를 보며 다시 처음을 생각합니다. 31년 전에는 지금과 같은 기술이나 경험, 사역의 기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북한 땅에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선교의 시작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합니다. 갈 수 있다면 가고, 갈 수 없다면 전할 방법을 찾습니다. 만날 수 있다면 만나고, 만날 수 없다면 복음이 그 사람에게 닿을 길을 찾습니다. 31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은 여전히 우리가 자유롭게 찾아갈 수 없습니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직접 찾아가 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못 간다고 해서 복음까지 갈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파는 국경을 넘어갑니다. 누군가 깊은 밤에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고, 누군가는 아주 작은 소리일지라도 말씀과 찬양을 듣습니다. 이름과 얼굴을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곳에 닿을 수 있습니다.
지난 30년의 사역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보지 못했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우리는 씨를 뿌리고 물을 줄 뿐입니다. 자라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31주년을 맞은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기관의 이름도 아니고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이나 우리의 업적도 아닐 것입니다. 언젠가는 ‘TWR Korea 북방선교방송’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애써 만든 방송과 프로그램도 사라지고, 오늘 우리가 드리는 수고와 헌신도 누가 했는지 기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선교의 목적은 우리의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예수님의 이름은 남아야 합니다. 우리의 수고는 흩어져도 복음의 열매는 남아야 합니다. 북방선교방송의 이름이 사라지더라도 북녘 땅에 예수님의 이름이 남고, 우리의 헌신과 노력을 양분 삼아 복음의 열매가 남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다한 것입니다.
31년 동안 함께 기도하고 후원하며 이 길을 걸어주신 모든 동역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수많은 동역자들을 붙여주시고 이 사역을 사용해주셨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른한 번째 해를 걷습니다. 30년을 잘 마쳤다는 마음보다, 올해가 첫 해라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우리의 수고가 잊혀지고 복음의 열매가 그 땅에 남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서른한 번째 해에도 다시 순종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북녘을 향해 복음을 전합니다.
만날 수 없어도 전할 수 있어요.
2026년 9월 10일
이김 대표(TWR Korea 북방선교방송)